끄적끄적, 사색하기2008. 11. 2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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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음악, 그리고 능동적 감상 태도(11월 7일, 2008 The Pathway Concert Series ‘내 백성을
위로하라’
)”

이 음악회에 대한 정보는 서울대학교 오희숙 교수님의 ‘실내악의 이해’라는 다른 강좌
를 통해서 얻었다. 교수님께서 친히 추천하신 음악회였기에 일단 흥미가 생겼고, 또한 교수
님의 옆자리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몸을 금호아트홀로 이끌었다. 게다가
작곡가 분이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신 이신우 교수님이라는 말을 듣고 더더
욱 관심을 갖고 감상하게 되었다.

‘현대음악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작곡가의 시대적 음악 경향이 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음악회에 가기 전에 미리 작곡가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해보았다. 이신
우 작곡가의 음악들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귀국한 시점을 기준으로 두 분류로 구분될 수
있다. 1997년 전에 영국에서 작곡된 그녀의 작품들은 대체로 음향적이고 현상학적인 1950
년대 이후 유럽 현대음악의 맥락 안에서 파악된다. 반면 1997년에 귀국한 이후에는 자신만
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찾는데, 특히나
보이지 않는 손, 기쁨의 노래, 열린 문
등의 작품을 통해 기독교적인 내용 중에서도 주로 성경 속에 내포된 중요한 의미들을 음악
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주력한다. 이렇게 음악작품에 종교적이고 숭고한 정신과 사상이 깃
들어 있는 것을 종교음악이라고 한다.

(작곡가 이신우의 홈페이지 참조. http://www.psalm20.net/menu01_intro.php)

이번 코랄 환타지 ‘내 백성을 위로하라’도 마찬가지로 성경 속의 중요한 메시지를 음악
으로 만든 것이다. 즉 작품 속에 음악가가 생각하는 종교적 가치나 사상, 의미 등이 담겨있
는 전형적인 종교음악이다. 다만 이번 음악회는 이러한 메시지를 청중에게 쉽게 전달해주는
‘가사’가 없다는 측면에서, 작곡가나 감상자가 작품을 일종의 표제음악으로 접근하게 된다는
특징이 보였다. 음악회 팸플릿 속에 각 곡들에 내포된 텍스트를 통해 감상자들은 미리 음악
의 주제 혹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팸플릿에서 설명된 이번 음악회에서는 ‘예수님이 수많은 죄를 지은 인류를 대신하여 십
자가에 박혀 돌아가시고, 덕분에 인간은 속죄와 구원을 얻게 되었다’라는 성경 속의 내용이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표현 과정 속에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을 노래한 바흐의 코랄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도(Christ lag in Todes Banden)'과 새로 작곡된 또 하나의
코랄 선율이 중심적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총 9곡으로 구성된 이 음악회에서는 7개의
피아노 독주곡과 2개의 관현악 합주곡이 연주되었다.

구체적으로 우선 신포니아(Sinfonia)는 가난, 슬픔, 아픔 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치유
되는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사야서 61장 1-2절의 텍스트를 표현한 곡이다. 내림가
장조의 피아노 독주곡이었는데, 긴 페달링 속에 짧고 강한 터치가 반복되어 밝고 경쾌한 느
낌을 주었다. 해설을 보면 이 부분이 음악회 전체에 걸쳐 반복, 변형되어 사용되는 새로운
코랄이라고 하는데, ‘회복’과 ‘구원’이라는 메시지와 잘 어울리는 선율이라고 느꼈다.

이어서 빠른 속도로 제1~5곡이 지나갔는데, 이 부분은 신포니아에서 들었던 선율과 다
르게 극적이고 긴장감 있는 전개가 나타났다. 음높이, 강세, 템포 등이 모두 불규칙적으로
사용되는 상황 속에서 선율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었다. 잔잔해졌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격
정적인 연주가 시작되었고, 왼손과 오른손이 치는 음들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기까지 했
다. 이러한 음악적 요소들이 모여서 제1~5곡의 메시지인 ‘인류의 죄’가 표현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제 6~7곡은 앞의 부분과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지만, 매우 낮은 음역
이 더 빈번하고 강하게 사용되어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특히 긴
페달링 속에서 낮은 음들의 소리와 불협화음이 합쳐져 앞의 부분보다 더욱더 긴장되면서도
슬픈 분위기를 나타냈다. 이 곡들에 해당하는 텍스트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좌절과 슬픔’이 음악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하는데, 더 다이내믹해진 강세와 낮은 음역의 반
복이 아마도 이를 나타내는 것인 듯 했다.

마지막으로 제 8곡은 드디어 밝고 힘찬 선율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조성체계를 맞춰서
작곡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 곡은 피아노의 빠르고 경쾌한 터치와 바이올린, 클라리넷의
밝은 분위기의 연주가 느껴졌다. 특히나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 주고받는 식으로 상승하는
선율을 연주했던 부분은 무언가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전까지 극
적이고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감정을 절제해왔던 연주자들이 이번엔 열광적으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모습도 이전까지의 어두운 분위기에 의해 불편했던 나의 마음을 한 순간에 시원하
게 해주었다. 이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인류의 속죄와 구원, 그리고 그에 대
한 기쁨과 찬양을 표현한 곡이다.

이렇게 인류의 죄와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음악회는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훌륭했다. 음악에서 느껴졌던 분위기와 나의 감정
이 작곡가가 의도했던 텍스트와 잘 부합했다. 음악 감상 전에 텍스트로부터 얻었던 느낌은
모든 음악을 듣고 난 후 더욱더 생생해졌고 확장되었다. 음악이 비록 가사를 내포하지 않아
도 작곡가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던 좋은 기
회였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음악회에서 최대한 열심히 감상했고 많은 것을 느꼈지만, 이번 음
악회 감상이 완벽히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이신우 작곡가님의 음악회 안에서 그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잘 표현되었다는 것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리고 이 음악회가 훌륭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나의 감상 태도였다.

뒤늦게 같이 음악회를 감상한 오희숙 교수님과 동기들의 감상 소감을 들은 후, 이번 음
악회에서 연주되었던 음악들이 사람마다 매우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졌음을 알게 되었
다. 친구들 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친구들이 오히려 더 많았고, 그들은 텍스트에 의존
하여 곡을 해석하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작품들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을 해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리 텍스트를 읽고 그에 맞춰서 감상하려고만 했지, 자신만
의 방식으로 해석하려 시도하지 않았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제시된 텍스트는 그 음악들
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한가지일 뿐인데, 아무리 표제음악이라도 굳이 작곡가가 제시
한 주제와 의미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텍스트의 권
위에 눌려 수동적인 감상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작곡가의 의도대로 해석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동적인 태도로 그것을 수용하기보다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감
상해보는 태도가 더 비판적이고 참신한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번 음악회는 두 가지 의미에서 나에게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훌륭한
작품과 연주를 감상함으로써 음악적 소양을 더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능동적인 태도로 음
악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Posted by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