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유로운 감상2011. 7. 31. 23:12


이권우,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를 읽고

책읽기의달인호모부커스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이권우 (그린비, 2008년)
상세보기

 

독서의 달인으로 불리는 저자는 출판저널의 전 편집장으로 현재는 도서평론가와 문화운동가를 자처하고 있다. 희망의 증거가 되길 바란 적은 없어도, 희망을 만들어가는 대열에 동참하고자 한다는 저자는 독서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노하우를 넘어 우리 사회의 진보에 대한 의견까지 서슴없이 풀어놓는다.

 

저자는 우선 독서의 당위성부터 설명한다. 공자의 예를 들며 세속적 신분상승과 존재론적 변화(정신수양, 성인)에 독서의 영향력이 지대함을 설파한다. 또 독서는 마치 야구에서의 달리기처럼 기본적으로 닦아놓으면 어디서든 도움이 되는 것이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안정적인 저축이라 얘기한다. 또한 정서적 안정과 치유의 기능도 제공한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의 주장들은 모두 지겹도록 들어본 이야기긴 했지만, 그 주장에 적절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명확한 논리를 덧붙여 이야기하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독서의 당위성을 얘기한 1부는 저자의 이론을 적용하면 각주의 책읽기에 해당할 듯하다. 원래 알던 사실과 가치관에 더욱 탄력 있고 건강한 살점을 붙인다고나 할까.

정신적 안정과 치유의 기능과 관해서는 알랭드 보통이 수작 에세이 불안에서 말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문학이 사회에서 불안을 야기하는 부조리한 부분을 설득력 있는 스토리 전개로써 비틀고 교정하려는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배금주의가 만연한 사회를 배경으로 오로지 돈이 인간의 가치측정의 기준이라는 속물들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 때로는 익살맞게 때로는 잔인하게 - 풍자하고 타당하게 비판하는 소설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를 사례로 들며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

 

2부에서는 독서의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우선 본격적 방법론을 말하기 전에 책 선정에 있어서 주의할 점을 이야기한다. 그건 바로 권위를 맹신하지말자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로 저자는 삼국지를 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는 병법을 얘기하는 삼국지, 권모와 술수가 넘쳐나고 살육과 탐욕으로 점철된 삼국지가 굳이 청소년의 필독서인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다.

 

이에 관해 내 사견을 덧붙이면 저자의 주장엔 100% 공감하나 삼국지의 예는 약간 지나친 감이 있긴 하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단순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정글 이야기를 넘어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정글 속에서도 꽃피는 신의와 우정의 아름다움(도원의 결의, 유비와 제갈량)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조가 관우를 살피어 놓아주는 것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도 지켜야 할 룰이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수많은 속물들과 저열하고 도의를 저버린 이들보다 유비와 관우, 제갈량, 때로는 조조가 더욱 주목 받고 영웅시되지 않는가. 지극히 현실적인 척하면서도 그 속에 참된 가치를 보여준다고까지 보는 건 조금 무리일까? (삼국지를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방법론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책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다. 1부에 서술된 책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면 책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의문을 던지고 고민하고 상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다 만들어준 걸 단순히 즐기는 걸 뛰어넘어 그 의미를 재구성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니까.

저자는 나아가 속도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극단적 면모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해답이 바로 천천히 책읽기에 있음을 언급하기도 한다. “살아가는 리듬이 다르면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책을 아주 천천히 읽는 나로서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말씀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무척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반드시 책과 관련된 생각은 아니고, 전혀 무관한 잡념도 많이 하긴 한다. 그럼에도 속독을 강조하고 다독을 말하는 사회에서 나의 느릿한 독서습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잡념은 줄여야겠지만 중간중간 이해한 내용을 정리하고 심화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습관은 유지해야겠다. 아참, 저자는 책 읽는 도중에 메모하는 습관이 좋다고도 하는데, 요즘 들어 메모하면서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이 순간 뿌듯하기도 했다.

 

저자는 깊이 읽는 방법론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한다. 우선 토론의 효용성을 말한다. 토론은 생각의 비논리성과 불명확함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도록 돕고, 깊은 고민을 유도하여 올바른 방향으로의 사상적 전회를 안내한다는 것이다.

대학생활 동안 독서토론의 기회가 꽤나 있었는데, 나 또한 이것이 지금의 나까지의 성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을 정리하고 피력하며 타인의 의견과 부딪쳐보는 과정은 똑똑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독후감이 차선책이라고 한다. 단순한 책의 정리를 넘어서 이를 재구성하고 성찰하고 자신의 이야기로 바꿔가는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저자는 깊게 읽는 방법으로서 한 주제를 선정하여 그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비교하면서 읽는 방법을 추천한다.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여 그와 관련된 책들을 골라낸다. 각 책들을 읽어보고 세 권의 책을 관통하는 그 주제를 논제로 삼아 일관성 있고 논리정연한 나의 생각을 뽑아낸다.” 확실히 한 주제에 대해 한 권만 읽고 넘어가는 건 저자의 권위에 기댈 가능성도 크고 저자의 생각 이상을 넘어서는 게 불가능할뿐더러 저자의 의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한 저자를 선정하여 그 저자를 연구하는 책읽기의 방법이다. 조희봉씨가 이를 전작주의라고 명명했다. “전작주의란,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흐르는 흐름은 물론, 심지어 작가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징후적인 흐름까지 짚어내면서 총체적인 작품세계에 대한 통시/공시적 분석을 통해 그 작가와 그의 작품세계가 당대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아내고 그러한 작가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일정한 시선을 의미요즘 알랭 드 보통을 연구하고 있는 나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확실히 아무래도 같은 작가가 쓴 책들은 그것을 관통하는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 각주의 책읽기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는 책을 읽는 것이다. 자신의 논리를 강화할 수 있지만, 스스로를 편견에 가득찬 완고한 성채에 가둘 수 있는 맹점이 있다. 이크의 책읽기는 이크라는 감탄사에서 느껴지듯이 지적 충격을 함축한 독서법이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독서를 통한 자기발전의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책 읽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학교에서 자연스런 독서가 가능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함을 주장한다. 저자가 문화운동가로서 자처하는 것이 이런 생각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의 변화와 교육제도(입시제도)의 혁신, 그리고 나아가 더 근본적으로 학벌주의의 지양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저자가 1부에서 얘기한 독서의 효용성을 충족시키려면 2부에서 얘기한 방법론대로 독서가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올바른 독서방법론은커녕 독서 그 자체를 하기 힘들게끔 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사회의 발전과 정의를 위해(저자는 모두가 올바른 독서교육을 받을 때 사회양극화와 계층 간 격차가 최소화될 것이라 주장) 우리 모두가 올바른 독서교육의 문화를 위해 발 벗고 노력해야 됨을 호소한다.

 

 

 

 

 

 

 


Posted by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