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유로운 감상2013. 1. 16. 20:06


라다크에서 배운 우리사회의 지향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 녹색평론사, 2006.

 

시간은 금이다.”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격언이다.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 자투리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자기계발에 몰두한다. 기업은 시간의 초 단위까지 나눠가며 생산 시간을 관리한다. 입시부터 취직, 승진까지 경쟁으로 점철된 체제 속에서 삶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삶의 여유를 잃었다. 소득격차는 확대되고 정서적 불안과 스트레스는 커져만 간다.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이와 같은 현상들을 서구식 개발의 결과로 본다. 저자에 따르면 끝없는 경제성장과 물질적 번영은 정신적·사회적 빈곤, 심리적 불안정 그리고 문화적 생명력의 상실을 대가로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의 설득력은 저자의 독특한 경험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1975년 천 년 넘게 자급자족의 생활을 꾸려온 라다크에 방문한다. 언어학자로서 그녀는 단기간에 라다크어를 습득하며 그곳의 전통문화와 자급자족 생활을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라다크에서는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서구문화가 도입된다. 그녀는 변화하는 라다크의 모습을 보며 서구식 개발의 본질을 목격한다. 이는 서구인과 라다크인의 시각을 동시에 보유했던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래된 미래는 위와 같은 그녀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작품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라다크의 전통적 가치를 다양한 측면에서 밝힌다. 라다크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검약의 정신, 긴밀한 사회적 유대, 자연과의 공생을 통해 자급자족 생활을 꾸려왔다. 이는 그들에게 정서적 안정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해주었고, 그들의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가득했다.

 

2부는 서구문화의 도입으로 변해가는 라다크의 모습을 보여준다. 1974년 이래로 라다크에서는 도로와 에너지 생산 시설, 서구식 교육과 의료, 화폐경제, 관광 사업을 비롯하여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열등한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점차 탐욕스러워진다. 삶의 여유는 사라지고 공동체는 분열된다. 이러한 변화는 무력감과 정서적 불안의 확산을 동반한다.

3부에서 저자는 그녀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전한다. 그녀는 '개발=서구화'라는 등식을 부정한다. 변화된 라다크의 부정적 모습은 개발의 필연적 귀결이 아니다. 그건 서구식 개발의 결과다. 오늘날 서구식 개발은 지역의 특수성과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 경제체제를 강요한다.

 

결국 저자는 다른 방식의 개발을 제안한다. 이는 반개발이란 단어로 압축된다. 반개발은 우선 그릇된 이미지를 바로 잡아 서구식 개발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므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영위해온 사회적, 생태학적 균형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도 그들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따라서 개발은 라다크의 전통을 무너뜨리는 서구화가 아니라 전통의 토대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오래된 미래의 개발방식이다.

그녀가 잘 지적하였듯이 20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세계화의 실체는 서구화이다. 많은 비서구권 국가들은 서구 선진국의 상품을 구매하고 자본을 유치하며, 그들을 위해 특화된 원료를 생산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서구화에 대한 환상과 열등감이 강하게 작용하며 더 수월히 진행된다. 그리하여 서구 국가, 더 정확하게는 서구 자본가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이윤을 확대하는 힘이 된다.

 

라다크에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것 또한 서구화에 불과하다. 다만 라다크가 저개발사회였기 때문에 그것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더욱 정당화되었을 뿐이다. 이 책은 라다크에서 진행된 서구화의 본모습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자급자족 경제로부터 개발의 전 과정을 목격함으로써 서구화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밝힌다. 철저히 경험에서 우러난 그녀의 설명과 주장은 설득력을 확보하고 공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서구화의 과정이 라다크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다. 그 자체만으로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나아가, 저자는 현실 진단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풍부한 묘사를 통해 보여주듯 라다크의 전통적 가치는 매우 소중하다. 공동체 의식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인간은 뿌리 깊은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며 삶의 여유를 만끽한다. 서구화된 사회에서 결여된 이와 같은 가치들은 진정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이다. 그것은 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이다. 저자는 이러한 개발을 반개발지역화로 부른다.

 

이러한 개발은 아직 그 힘이 약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역식품의 생산 운동이 대표적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은 장거리 수송식품보다 더 신선하고 맛있고 영양이 풍부하다. 또한 에코빌리지의 건설 움직임도 활발하다. 스웨덴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도 성미산 공동체와 같은 생태적 마을이 등장했다. 이외에도 유기농 식품의 선호와 천연재료를 통한 건축, 충분한 유대감을 갖게 하는 육아방식이 그러하다.

 

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은 분명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우리 사회는 특권적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국민과 자연이 희생당하고 있다.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거대 기업의 높은 이윤인가, 아니면 다수 국민의 행복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결코 역사의 발전에서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 아니다. 이는 서구식 개발의 결과일 뿐이다. 오래된 미래는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이 책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까닭이다.

Posted by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