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유로운 감상2011. 9. 19. 11:34



1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2
사랑에 배신은 없다.
사랑이 거래가 아닌 이상, 둘 중 한 사람이 변하면 자연 그 관계는 깨어져야 옳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게 후회로 남으면 다음 사랑에선 조금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 있을 뿐,
죄의식은 버려라. 이미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은 애인을 어찌 옆에 두겠느냐.
마흔에도 힘든 일을 비리디 비린 스무 살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가당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더 사랑했다 한들 한 계절 두 계절이고, 일찍 변했다 한들 평생에 견주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다 괜찮다.
(첫 사랑에게 바치는 20년 후의 편지 "버려주어 고맙다" 중에서)

3
"사랑만 하기에 인생은 너무도 버겁다."


4
"일이 주는 설레임이 한 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바로 권력을 만났을 때다.
...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나 약자라고 생각할 때,
그 설렘은 물론 사랑마저 끝이 난다.
이 세상에 권력의 구조가 끼어들지 않는 순수한 관계가 있을까? 모를 일이다."

5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배신당하고 상처 받는 존재에서
배신을 하고 상처를 주는 존재인 걸 알아채는 것이다.

6
그런데 정말 길들여지지 않는 건 바로 이런 거다.
뻔히 그녀의 맘을 알면서도 하나도 모르는 척,
이렇게 끝까지 그녀의 속을 뒤집는,
뒤틀린 나 자신을 보는 것.





'나이 든' 노희경씨의 글은 섬세하고 담담하며 냉정하리만치 차분하다.
그녀의 젊은 시절 강연내용에서 느껴졌던 젊은 피나 들끓는 열정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인생의 낭만을 그리는 드라마 작가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자주 통속적이고 신파적임을 인정한다.
물론 낭만의 꿈을 쉽게 놓진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런 그녀의 말들은 사랑과 일, 가족, 인생을 색안경 없이 보이는 그대로 표면에 끌어올린다.
그리고 섬세하게 다룬다. 아름다운 인생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참, 가벼운 어조로 깊은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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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늘☆